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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도에 묻히다.

천만도2 2012. 8. 12. 13:41

 

 

자바섬에 간 조선인들,그들은 누구인가
―태평양 전쟁 당시 네덜란드·영국군 포로수용소 관리군무원으로 조선인 선발

<적도에 묻히다>는 태평양전쟁 당시 인도네시아 자바섬으로 파견되었던 조선인 군무원들의 이야기를 추적한 역사르포르타주이다. 군무원이란, ‘군인은 아니지만 군에 속해 있는 공무원’으로서 군의 가장 말단에서 군의 임무를 보조하는 존재였다. 일본이 패전한 시점에서 조선인 군무원의 수는 육군 70,424명, 해군 84,483명으로 총 15만 명을 넘어서고 있었다. 여기에는 해군 토목사업에 종사한 ‘해군작업애국단’ 32,248명, 육군의 ‘북부군 경리부 요원’ 7,061명, ‘운수부 요원’ 1,320명 외에 자세한 실태가 밝혀지지 않은 다수의 군무원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중 포로수용소 감시요원으로 선발된 군무원은 총 3,223명이었다. 일부는 조선으로 끌려온 백인 포로들을 맡았고, 일부는 타이완으로, 인도네시아로 파견되어 현지에서 포로수용소 관리업무에 종사했다.

식민지적 저임금과 생활고 속에서 월급 30엔(전쟁지역수당 20엔 추가), 2년 계약 만료 이후 면서기 등으로 취업 보장 등, 군무원의 계약조건은 매력적이었다. 조선말 사용을 금지당하고 이름마저 일본식으로 바꾸어야 했던 식민지 청춘들에게 ‘군무원’ 지원은 ‘병사’로 끌려가느니 차라리 선택해볼 만한 탈출구였다. 답답하기만 한 조선땅을 떠나 머나먼 ‘적도의 땅’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할 수 있다는 아스라한 설렘도 가져다주었다.


“아시아의 강도, 제국주의 일본에 항거하는 폭탄아가 되어라!”
―암바라와 항일반란사건과 고려독립청년당

이 책의 저자인 무라이·우쓰미 부부가 ‘적도에 간 조선인 군무원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1975년경의 일이었다. 전부터 재일 조선인 문제를 연구하고 있었던 우쓰미가, 현대 인도네시아에 관심을 지녔던 무라이의 인도네시아 유학길에 동행한 것이 본격적인 시작이 되었다. 그곳에서 인도네시아 독립영웅으로 추대된 세 명의 일본 병사 중 한 명이 ‘양칠성’이라는 이름의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부부는, 본격적으로 인도네시아에 파견된 조선인 군무원들의 발자취를 쫓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고려독립청년당’이라는 이름과 암바라와의 항일 반란사건을 만나게 된다.

남방에 도착한 군무원들은 굶주림과 강제노동으로 비참하게 죽어가는 포로들을 목도하면서, 제국 일본과 태평양전쟁의 잔혹함을 절감해야 했다. 더불어 일본 병사들의 차별과 모멸에 이중으로 시달리면서 나라 잃은 백성의 서러움을 가슴에 새겼다. 그 과정에서 ‘고려독립청년당’이라는 조직이 탄생했다. 총령 이억관을 필두로 총 26명으로 이루어진 고려독립청년당은, 연합군이 자바섬에 상륙하는 시점에 일본군 내부로부터 무기를 탈취하여 게릴라전을 펼치면서 일본의 패전=조선의 독립에 힘을 보탤 것을 계획했다.

자바 포로수용소 암바라와 분소에서 발생한 손양섭, 노병한, 민영학 세 당원의 항일 거사는 수송트럭을 탈취하여 포로수용소 소장과 일본인 무기상인 등을 사살하는 전쟁 행위로 이어졌지만, 결국 세 당원의 비극적인 자살로 결말을 맺었다. 고려독립청년당 당원들은 이를 당 차원의 항일 거사로 규정하고, 제2차 거사로 포로수송선 탈취를 계획하는 등 머나먼 타국에서 조국 독립에 힘을 보탤 수 있는 길을 끊임없이 모색하고 있었다.


지옥같은 전쟁이 끝난 날, 다시 시작된 전쟁
―전범으로, 인도네시아 독립영웅으로

일본 천황의 항복 선언과 함께 인도네시아에도 연합군이 상륙했다. 네덜란드와 영국군은 “전쟁범죄에 관한 한 조선인은 일본인으로 취급”한다는 방침을 확정했으며, 조선인 군무원들이 근무했던 포로수용소·억류소는 ‘조직적 테러단체’로 규정되었다. 일본제국의 전쟁에서 최말단의 첨병 노릇을 했던 조선인들은 곧바로 전범으로 규정되어 재판정에 서야 했다. 네덜란드령 인도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조선인은 모두 68명(사형 4명), 영국군이 주도한 싱가포르 법정의 유죄 판결은 6명(사형 1명)이었다.

한편, 전범 용의자로 수감되기 전 극적으로 일본군을 탈주하여 인도네시아 독립전쟁(對 네덜란드)에 투신한 조선인도 있었다. 무라이·우쓰미 부부는 일본에서 이 책이 출간(1980)된 뒤 30여 년 동안 포기하지 않고 계속 그들의 이름을 찾아주려 노력했다. 그 결과 원서에는 없는 부록의 ‘추기’를 한국어판에 추가하여, 양칠성 외에도 최소한 7명의 조선인이 인도네시아를 지배하려는 또 다른 제국주의 네덜란드와 대항하여 싸우다 죽어갔음을 밝혀낼 수 있었다.

무라이·우쓰미 부부는 “인종과 민족을 초월하여 반제국주의 투쟁을 함께했던 조선인, 일본인, 인도네시아인들의 뜨거운 열정과 해방의 공기는 어디로 간 것일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고통이나 슬픔, 억울함이 사라진 한일관계”가 구축되고, 일본이 진실로 20세기의 역사를 반성할 수 있을 때, 인도네시아 독립전쟁의 역사는 크나큰 역사적 교훈과 감동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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